
비운의 정치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금일(20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고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 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1967년 제7대 국회 때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권에 진출해 7선 의원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선 부산 동래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국회 5공비리조사 특별위원장을 지냈다.고 이기택총재는 1990년 3당 합당 때 참여를 거부하고, 당시 노무현, 김정길, 홍사덕, 이철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 총재까지 지냈다.
이기택 전 민주당총재는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한 채 대통령후보 한번 되어보지 못하고 쓸쓸히 여생을 마쳤다.그는 1992년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당시 김대중 공동대표로부터 다음번에는 이기택대표라는 언약을 전국의 수많은 당원들 앞에서 받았으나 김대중 대통령의 대권 3수의 희생양이 되어 철저히 고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이용만 당한 채 한 많은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DJ는 92년 대선에서 실패하고 새정치국민회을 만들어 이기택대표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97년 대권3수에 도전하면서 92년 수많은 당원 앞에서 다음번에는 이기택대표라는 전당대회의 약속을 저버렸다. DJ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 97년대선 출마와 당선으로 정치적 미아 신세로 전락한 이기택 총재는 쓸쓸한 정치 말년을 보내다가 정치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이당저당을 옮겨다니며 마지막으로 양지만을 좇다 쓸쓸히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에 차려지며, 발인은 24일, 장지는 4.19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자료사진-1991년 대선 1년여를 앞두고 신민당과 꼬마 민주당의 합당 모습

자료사진-1992년 대선을 앞두고 故 김대중대통령과 전당대회개최문제로 갈등을 빚던 모습

사진-1992년 전당대회서 다음번에는 이기택총재라는 언질을 받고 김대중후보의 선거유세를 지원하던 故 이기택총재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