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무정자증으로 인한 난임 탓에 아내가 다른 남자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자녀가 태어났을 경우 남편의 친자식으로 볼 수 있을지와,부인의 혼외관계로 태어난 자식을 친자식으로 알고 출생신고를 했을 경우 법률적 친자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대법원이 각계 전문가들을 통한 공개 변론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금일(20일) 대법원은 대법원장 및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형식으로,오는 22일 오후 남편 A씨가 자녀 둘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 공개변론을 연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다른 사람의 정자로 임신·출산한 점 등이 확인돼 혈연관계가 없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된 경우에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현행 판례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만이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인정된다.
남편인 A씨와 부인 B씨는 남편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으로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한 A씨는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2014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 검사결과에서도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1·2심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남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은 인공수정 뿐만 아니라 ,혼외관계 자식에 대해서도 비록 혼외 관계로 태어났으나,남편이 출생신고를 한 점을 들어,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춰 양친자관계가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부부가 동거하지 않은 등의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한 경우에만 (친자) 추정이 깨질 수 있다'고 판단한 198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무정자증으로 가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명백함에도,별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친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은 지나친 형식적 판례 인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남편 A씨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36년 전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보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사건 판결이 녹록치 않다는 뜻으로 재판부의 고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판례는 부부가 동거를 하지 않은 경우에만 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를 ‘친생추정의 예외‘라고 부르는데, 학계에선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판례 유지 입장과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 등 새로운 형태의 임신과 출산이 등장한 만큼 동거 유무와 상관없이 친생추정 예외의 범위를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례 변경 여부는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 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부양, 상속 등의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새로운 임신과 출산 모습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법적·의학적 문제와 관련 제도에 미칠 수 있는 파장도 적지 않다”며 “각계의 의견 수렴과 함께 폭넓고 치밀한 법리 검토가 수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법무부·보건복지부·한국민사법학회·한국젠더법학회 등 14개 단체에 의견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민사법·가족법 전문가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또한 남편인 원고 측 전문가 참고인으로는 차선자 전남대 로스쿨 교수, 피고인 부인측 전문가 참고인으로는 현소혜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가 출석해 의견을 진술한다.
한편 공개변론은 대법원 홈페이지·네이버 TV·페이스북·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방송될 예정이다.(주은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