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싶은 기자의 정열" 후속편을 보도한다. 한국언론 어느 곳에서도 보도하지 않은 제천화재참사의 감춰진 진실을 전한다.
왜 2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2층 여성사우나에서는 욕탕에서 발견된 희생자가 단 한명도 없었을까?
2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2층 여성사우나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2층 여성사우나 출입구는 세군데다. 2층 비상구와 1층 주자장 방향의 출입구와 1층 S마트쪽 등 1층에 2개의 주 출입구가 있다. 이 2개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한 지점에서 같이 만나게 되고 거기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카운터가 나온다. 카운터에서 목욕용품 등을 받아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가면 2층 여성사우나 유리문이 나오고 유리문으로 들어가 커텐을 젖히면 오른쪽으로 매점이 있었고 왼쪽으로 락카 등이 있다. (매점은 휴점 상태였다)
욕탕문을 열고 들어가면 냉,온탕 및 사우나실이 나온다.
욕탕은 S마트 정면쪽으로 통유리로 돼 있다.
그런데 문제의 2층 유리는 밖에서는 안이 안보이지만 안에서는 S마트쪽이 환하게 보인다.(새로운 건물주가 리모델링 하면서 코팅지를 발라 화재 당시는 S마트 등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4시 1분에 2층 희생지와 통화한 기록을 보면 아래 화재 인지 시점은 변함이 없다.-註)
당시 희생자들은 연기나 화염을 통해서 또는 소방차를 통해서 화재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적어도 3시55분에서 소방차가 도착한 4시 사이에서는 화재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유가족이 2층 희생자와 4시1분에 화재가 났다고 통화한 사실이 있음을 기자에게 밝혔다.
욕탕에서 나가 락카에 넣어둔 전화기를 찾는 시간까지를 감안하면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에 희생자들은 이미 화재사실을 알고 욕탕을 빠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2층 희생자의 시신 위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욕탕에서 희생자가 발견되지 않은 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소방대가 2층 유리창을 깨지 않은 과실과 함께 2층으로 진입해 인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 과실이 보다 명확해지려면 희생자 대부분이 욕탕에서 발견됐어야 했다.
연기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살려고 출입구쪽을 찾아 가거나 연기를 피해 욕탕쪽으로 들어와 창문을 애타게 두드리게 돼 있다..
그런데 20명의 희생자는 2층 출입문과 락커쪽에서 발견되었다.
욕탕으로 들어올 수 없는 급박한 상황속에서 희생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출입문쪽에서 희생된 고인들 가운데 누군가는 출입문을 열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자욱한 유독가스에 탈출할 엄두를 못내고 문을 다시 닫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다량의 유독가스가 사우나 탈의실로 유입됐으며,욕탕으로 피신할 겨를도 없이 출입문과 락커쪽에서 고인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유추하면 사망시간은 어렵지 않게 추정된다.
현재 2층 희생자와 4시1분부터 통화한 유가족의 증언은 매우 중요하며 이 같은 증언은 사망시간 추론을 가능케 한다.
유가족의 통화기록을 보면 4시 2분,6분,7분,11분으로 나와 있다.
이 중 4시와 4시 2분,6분은 직접 희생자와 통화한 것이며 7분은 119에 신고한 통화 기록이다.통화기록에 119 긴급전화란 표시가 선명히 남아있다.

4시11분은 마지막 통화기록이다. 전화를 받지않은 시간이다.
결국 희생자는 4시6분을 끝으로 7분에서 11분 사이에 급변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가정한다면 2층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던 방법은 4시에 도착한 화재진압대가 무조건 출입문이나 비상구쪽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어야 그나마 가능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보면 소방대원이 도착한 시각은 화재신고가 접수된 7분 뒤인 4시 정각에 현장 지휘차와 함께 펌프차 2대와 구급차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으며,소방대원들은 우선 LPG 저장 탱크 폭발을 막기 위해 물을 뿌리며,동시에 불타고 있는 주차 차량 진화에도 나섰다.
당시 3층 벽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이때까지 인명 구조를 담당하는 구조팀은 현장에 없었다.
1.3Km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서 고드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팀이 도착한 시각은 맨 처음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뒤 8분이 지난 오후 4시 8분이었다.
따라서 구조팀이 도착한 4시8분 이후를 기준으로 2층 희생자를 살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기자의 판단으로 2층 유리를 깨달라고 애원했다는 유가족은 모두 4시8분 이후의 상황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 도착한 소방대는 화재진압대로 인명구조팀이 아니기에 사실상 화재진압에 전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화재진압대의 1층 주차장 차량화재 진압 행위를 갖고 과실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4시8분에 도착한 구조팀이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유리를 깨는 방법과 1층 주 출입문과 비상구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자가 화재 후 건물을 한바퀴 둘러본 결과 평상시에도 비상구 찾기가 쉽지 않았다.건물을 지키고 있던 전의경에 묻기까지 했다.찬찬히 살펴봐도 찾기가 녹록치 않았다. 화재 당시 화염과 연기가 자욱했던 상황에서는 더더욱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평상시에 제천의 주요건물에 대해 비상구를 미리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면 도착하자마자 비상구로 진입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비상구를 찾는데도 2층 유리창을 깨는데도 4시8분 이후로부터 최소 5-10분은 소요됐을 것이다. 가장 짧은 5분을 대입하면 4시 13분이 되는 것이다.4시 8분에 도착한 구조팀과 4시 6분에 희생자와 통화하고 4시7분에 119에 신고한 다음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4시11분에 통화가 연결되지 읺았다는 유가족의 증언을 종합하면 4시8분 도착과 마지막 통화 4시 11분과는 불과 3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유리창을 못깨 인명을 살릴 수 있었는데 못살렸다는 주장은 합리적 추론에서는 비이성적 주장에 가까운 것이며 이를 쓴 언론은 오보에 가까운 것이다.
유족들이야 애타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층 유리창에 집착할 수 있어도 언론은 냉철해야 한다.
기자가 관련 통화 데이터를 근거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4시 8분에 도착한 구조팀이 20mm의 유리창을 깨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유리를 깨는 도중에 이미 사망에 이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연기가 없는 평상시 상태에도 20mm의 유리창을 깨는데 최소 5분 이상이 소요된다. 코팅지가 있어 도끼로 깨도 도끼로 찍은 곳만 깨지고 나머지는 깨지지 않는 것이 이번 2층 화재 참사 2층 유리창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유리창은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다.
옆 창틀만 깨면 유리가 주저앉았을 것이란 주장은 유가족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그러나 유리 깨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제천뉴스저널에 제보한 제보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일부 유가족의) 이러한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인 주장에 가까운 것이다.망치로도 깨지지 않는 이번 2층 유리창은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 소방당국과 국토부가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20명이 희생된 2층에 한해서는 소방관들에 대해 과실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기자의 판단인 것이다. 현재까지 4시 8분에 도착한 구조팀과 4시 11분에 통화가 연결되지 않은 이 3분의 진실을 파기할 새로운 증거물은 아직 없다.
4시와 4시 2분 4시 6분 등의 여러차례 직접적인 통화 후 4시 11분에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궂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찰의 소방서 압수수색은 마녀사냥식 수사에 불과한 것이며 천부당 만부당한 일로 여론재판에 공권력이 휘둘린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충북소방본부장과 제천소방서장의 경질까지는 넘어갈 수 있어도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까지 문책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지나친 여론 재판식 인사조치인 것이다.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은 유서까지 써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이미 지난 남현동 Y피부과 1회용 주사기 재사용문제에 있어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원장을 진실한 보도로 살린 경험이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의 전제는 펜에 진실과 정열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녀사냥식 보도로 아까운 소방관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충북소방본부장과 제천소방서장이 이미 직위해제로 경질됐다. 이제 더이상 문책은 유족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언론과 소방당국,경찰과 정치권이 냉철한 이성을 찾기 바란다.
한편 2층을 제외한 다른 층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기자가 희생자의 정확한 발견지점과 시신상태 등에 대한 정보와 통화기록을 확보하지 못해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기자는 20여명의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2층의 참사를 중심으로 우리가 냉철한 이성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는 더는 마녀사냥식 보도와 주장은 안된다.이번 제천화재 참사에 대한 주장과 기사는 반드시 논거를 갖춰야 한다.
휴대폰으로 직접 희생자와 통화한 녹음파일이나 기록 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어떻게 1시간 이상 고인들이 살아 있었다고 단정적으로 제목을 달 수 있겠는가 ?
또 경찰은 29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통화기록을 왜 확보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기자의 상식과 양식으로 이해가 안된다. 모든 통화기록과 육성녹음을 확보하여야만 소방관의 과실 문제를 따져볼 수 있는데 정작 중요한 일은 팽개치고 소방서부터 압수수색하는 공권력에 대해 국민과 시민들이 신뢰를 보낼지 심히 우려스럽다.
4시 8분에 도착한 구조팀과 4시 11분 마지막 통화기록과의 상관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3분으로는 애당초 소방관의 과실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제천소방서장 경질도 성급한 조치였던 것이다.
이번 화재참사 보도를 접하면서 기자는 지난 메르스사태와 백수오사태의 묻지마 기사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 땅의 언론이 바로서는 길과 국민의 편에 서는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첨언하면 기자는 오늘의 한국언론은 지난 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이후를 기준으로 권력의 들개에서 자본의 하이에나로 밖에 변한 게 없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권력에 충실했던 들개 언론이 이제는 자본에 충성하는 충견으로 바낀 것 밖에는 없다. 또한 한 언론사가 기사를 쓰면 모두 베껴써 황충떼(메뚜기)로 돌변하는 작금의 언론풍토는 언론개혁이 정치개혁과 사법개혁 보다 더 절실한 과제임을 웅변하고 있다.
힘없는 약자에게는 하이에나떼로 돌변하는 한국언론의 보도 태도는 반드시 개혁돼야 할 것이다.
못 구하고 안 구한 것으로 몰고가는 언론과 정치권, 또한 거기에 장단 맟추는 공권력은 이제는 자성하고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
이제 금주말이면 제천화재 참사 한달이 된다.제천뉴스저널은 이 한달을 기점으로 화재 보도 소식의 비중을 줄여 나가고자 한다.
이제는 29명 고인들을 제천시민의 가슴속에 묻고 추모공원이나 추모비 건립 등 생산적인 논의에 매진하기를 유가족과 제천시에 권하고 싶다.
끝으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부인 장경자(64)씨를 잃은 김인동씨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 낼 수도 있었지만 김씨는 그러지 않았다. 지난해 성탄절인 25일 그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부터 했다. 이어 “소방공무원 벌 절대로 주지 마세요. 인사이동 시키지마세요. 시청 공무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씨가 “벌 주지 말라”는 이유는 “이런 일이 자산이다. 한번 경험을 했으니 그 사람 그 자리에 두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 더 잘한다. 두 번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사람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그게 끝”이라며 “절대 징계나 인사이동 바라지 않는다. 징계를 받지 않으면 얼마나 미안하겠느냐. 그 사람들 목숨 걸고 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러한 고 장경자 유족의 숭고한 뜻을 외면하고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끝으로 기자는 우리 모두에게 화두를 던져본다..(주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