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 전화 민원에 일을 못할 정도다." (모 부처 한 고위 공무원) "요즘은 쪽지 예산이 아니라 카톡 예산이다."(기획재정부 한 고위 공무원)

내년 4월 총선을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이 벌써부터 지역민원 챙기기에 나서면서 의원들 등쌀에 정부부처 실국장급 고위 공무원들이 하소연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눈도장을 받기 위해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려 기재부뿐만 아니라 지역 사업 예산을 보유한 다른 부처에도 의원들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는 데다 지역구 주민과 연계된 산재 문제 해결 요구까지 하는 사례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최근 A의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역구에 있는 주민이 산재를 당했는데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이 공무원은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산재 판정을 담당하는 산재예방심사위원회에 잘 처리될 수 있도록 이야기해 놓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최근 들어 자신의 지역구에 소재한 기업이 예산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원들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며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요즘 여의도에서 비슷한 민원성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지방에 사업 예산을 내려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부처의 한 국장은 "이달에만 지역에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전화를 30통은 받은 것 같다"며 "의원이 만나달라고 해서 만나면 아예 비서관이나 보좌관이 문건으로 자기 지역구에 필요한 시설을 지어달라고 목록을 만들어서 온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의원별로 보통 3~4개 정도, 어떤 의원은 한번에 10개 시설에 대한 예산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의원실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 시설 분야를 다루는 다른 부처 사정도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민원을 넣는다. 이들의 목적은 지역구 예산안을 미리 알고자 하는 것. 기재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제일 바라는 것은 지역 예산안을 미리 아는 것"이라며 "미리 알게 되면 나중에 무슨무슨 예산을 자기가 땄다고 지역에 플래카드를 걸고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 쪽지 예산이 있었다면 요즘에는 '카톡 예산'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카톡으로 보내면 기록이 남아서 나중에 국회의원이 곤란할 것 같지만, 공개되면 지역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의원이 돼서 선거에서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원실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이런 분위기가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B의원실에 근무하는 한 비서관은 "통상 선거 직전 해에 연말까지 지역 사업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처에 연락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다음 선거 때 '내가 이거 했다, 저거 했다'며 자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의원실의 보좌관은 "아무래도 의원 입장에선 지역구 관리가 중요하니 지역 민원을 무시할 수 없다"며 "예전보다는 많이 투명해졌지만 평소 업무적으로 알고 있는 공무원들 에겐 의원들이 큰 부담 없이 연락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