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천뉴스저널=주은철 기자) 2025년 7월29일,한국 탐험계의 신화적 존재로 자리했던 제천 출신 허영호 탐험가가 71세의 일기로 별세했다.허영호 탐험가는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은 인류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그가 탐험가로 대성공을 거두는데 있어 절대적 역할을 한 계기는 산악인으로서 1980년대 히말라야 등반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81년 히말라야 마칼루원정대에 선발되어 1982년 마칼루 등정에 성공한다.그를 마칼루원정대에 선발해준 산악인이 故 함탁영 대장이다.허영호 산악인에게 있어 故 함탁영 대장은 구원의 동아줄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평소 히말라야 등반을 동경했던 허영호에게 있어 함탁영 대장의 마칼루원정대에 선발된 것은 구원의 동아줄에 비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함탁영 대장은 온화한 인품과 따뜻한 정으로 대원들을 이끈 진정한 산악인이었다.그는 히말라야 등반 도중 목숨을 걸고 조난당한 이스라엘 산악인들을 구해주고 셀파(포터)들에게도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 준 산악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2년 마칼루 등정에서 함탁영 대장은 정상 공격조로 여러 대원들을 제치고 눈여겨봤던 허영호 대원을 낙점했는데, 허영호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마칼루 등정에 성공한다.허영호 생애 첫 번째 히말라야 고봉 등정이자 1977년 고상돈 대원의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히말라야 정상 등정이었다.
1982년 마칼루 등정 성공 이후 고향인 제천에서의 환영 행사-단상에서 환영사를 하는 당시 제천산악회 송만배 회장-뒷편에 꽃 목걸이를 걸고 있는 허영호 대원의 모습이 보인다.귀한 사진자료로 독자가 제공했다.

허영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3년 마나슬루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며 산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마나슬루 등정에는 제천산악회 송만배 원장이 대장을 맡아 동행했으며,제천단양 시멘트 회사들의 후원이 있었다.
마나슬루 등정에 이어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한국 산악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이는 세계에서 세 번째이며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허영호는 살아 생전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한국인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산악인은 100여명이 넘는데 그중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은 오직 자신뿐이라며,자랑스러워 했다.
허영호의 이 겨울 에베레스트 등반 또한 마칼루 등반을 같이 했던 고 함탁영 대장의 작품이다.
그 비화를 들여다보자.비화를 들여다 보기 전에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으로 언론에 소개된 사진들은 1987년 등정 모습이 아님을 밝혀둔다.사진을 보면 공통적으로 오른쪽 가슴에 노란 표식이 보인다.이는 모두 한 사진이다.전문 산악매체와 레거시미디어에서 이 사진들 가운데 일부를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으로 소개하는데 이는 잘못된 보도다.




이 사진들은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이 아님을 제천뉴스저널 독자들은 기억하기 바란다.사진은 2007년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모습이다.
이어서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 비화를 들여다보자.
히말라야 등반은 네팔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입산이 가능한데 ,신청 후 10년이 걸려 허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함 대장은 1970년 5월 ,안나푸르나원정대의 부대장으로 정상 도전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만다.그러나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네팔 관광성에「검은 귀신의 산」이라 불리는 마칼루봉(8,481m)의 입산을 신청했는데 10년이 넘어 1982년 입산 허가가 떨어져 원정대를 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칼루 등정을 성공한 1982년 그는 네팔 관광성에 에베레스트 가을 등정을 신청했다.보통 10년이 걸리는 입산 허가를 그는 발품을 파는 노력으로 네팔 관광성 고위 간부를 설득해 1987년 입산허가를 받아낸다.입산허가를 5년 앞당긴 것이다.이는 1982년 마칼루 등정 성공도 한몫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당시 입산료 300만원을 포함해 항공료와 부식비 등 대원 1인당 1천만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했다. 대원 10명이면 1억의 경비가 드는데 지금 돈으로는 10억원이 넘는 거금이다.함 대장은 대원수를 6명으로 줄여 경비를 절약하기로 하고 허영호 대원에게 대원 추천을 의뢰했는데 ,허영호는 제천 출신으로 지금은 세계적 탐험가로 성장한 최종열 대원을 추천했다.
여기에 함 대장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신승모 대원이 정갑수, 손재식 대원을 추천해 6명의 대원이 꾸려지게 된 것이다.그러나 돈을 구하지 못해 가을 에베레스트 등정은 물건너 갔고 어렵게 얻은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함 대장과 허영호는 텐트와 배낭 등 스포츠용품을 제조 판매하는 MS스포츠 김일권 대표를 만나 가까스로 스폰을 받고 대원들의 갹출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설 수 있게 됐다.함 대장은 스폰서를 구하기 힘들어 가을 에베레스트 등반을 포기하고 겨울 에베레스트 등반을 택한 것이다.
허영호 입장에서는 이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애초 겨울 등반을 기획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 겨울에 오르게 된 것이다.겨울 등반의 입산료는 봄가을 시즌보다 훨씬 싸다.스폰을 구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겨울철 입산료가 싸기에 함탁영 대장은 6인의 '에베레스트 겨울등반대'란 모험을 택한 것이다.
이미 두 차례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는 자신에 차 있었지만 후일담에서는 "봄 여름과는 차원이 다르다"며,"겨울등반을 해보면 비로소 히말라야의 뜨거운 맛을 알게 될 것"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강풍에 텐트가 찢기고 날아가고 한발짝도 앞으로 움직이기 힘든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라며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반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87년 11월 우여곡절끝에 에베레스트 겨울 등반대가 한국을 출발해 1987년 11월 30일 해발 5,400m 지점 쿤부빙하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게 되는데,손재식 대원이 고산병에 걸려 후송되고 5명의 대원만 남게 된다.
12월 4일,해발 6,100m 지점에 C1(제1 캠프)를 설치하고 12월 6일에는 해발 6,600m 지점에 C2를 설치한다. 12월 10일에는 7,000m 지대에 C3를 설치하는데 악천후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을 맞아 어렵게 마련한 C3를 포기하고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하기에 이른다.
해발 5,400m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아이스폴의 눈보라

전진해도 모자랄 판에 하산에 힘을 쏟으면서 대원들의 마음도 무거워졌다.하산도 전진 못지 않게 힘을 써야하며, 더더욱 안전에 유의해야 하기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원정대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으나,여의치 않자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12월 16일 다시 정상 등정에 나섰다.베이스캠프를 출발 ,C2에서 하룻밤을 샌 후 12월 17일 C3까지 직행해 정상공격의 날을 기다렸다.
12월 18일,루트공작(등산로 탐사)에 나서 다음날의 등반을 위해 로프를 고정하는 등 준비작업으로 하루를 보낸다. 12월 19일 C3를 출발한 대원들은 C4지점인 사우스콜(7,986m)에 도착하여 다음날의 정상 공격을 위한 준비작업에 나서게 되었다.
드디어 12월 20일 여명의 새벽 1시 정상을 향한 도전이 시작됐다.
정상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크고 작은 빙벽부터 통과해야 한다.이 빙벽 통과는 겨울철 설악산 토왕성폭포 빙벽을 오르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따르는 고난의 행군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앞서 마주하는 빙벽 모습

에베레스트를 마주하기 전에 빙벽부터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빙벽과 사투를 벌인 대원들은 정상길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잘못든 것 같다는 무전보고를 하기에 이르르고 함탁영 대장은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철수를 명령한다.철수를 명령하는 함 대장이나 정상공격에는 나서보지도 못한 채 철수를 하는 대원들의 마음은 천근만근의 납덩어리가 누르는 심정이었을 것 같다.
함 대장은 1987년 12월 20일 당시 상황에 대해 "식량은 바닥나고 대원들의 사기는 꺽여 실패의 그림자가 자신을 짓눌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독실한 크리스찬인 함 대장은 주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함 대장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 있었던지 앞선 등반대의 식량을 눈속에서 찾아냈으며,산소통도 몇개 발견했다.함 대장은 이를 결코 우연이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필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원들의 사기는 다시 올라갔고 드디어 12월22일 새벽 1시 20분 허영호 대원을 필두로 정상공격에 나섰다.
정상공격은 순조로와 8,760m의 에베레스트 남봉을 12시에 도착하는 순항에 돌입했고,드디어 오후 2시 20분 허영호 대원과 셀파 앙리타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게 된다.
허영호 대원의 1987년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모습-산소마스크를 쓴 모습과 얼마나 바람이 거세었는지를 보여주는 찢어진 태극기가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 진짜 모습이다.

허영호 대원은 태극기와 네팔기, 아들이 준 마스코트를 에베레스트 정상에 묻었다.
허영호 “대장님, 마침내 성, 성공했습니다!”
함 대장 “영호야! 장하다! 장해! 그래 건강은 어때?”
허영호 “괜찮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바람이 좀 불지만 날씨는 좋습니다. 경치는 기가 막힙니다.”
함영탁 대장과 허영호 대원이 나눈 무선교신이다.
허영호는 40분간 정상에 머문 후 하산한다.그러나 하산길에 날이 어두워져 할 수 없이 비박을 택하게 된다.비박은 엉덩이 크기의 얼음을 깨뜨려 엉덩이 밑에 깔고 그 위에 배낭을 얹고 밤을 지새우는 죽음과의 싸움으로, 상상하기 힘든 고통으로 알려졌다.이 고난의 역경을 허영호 대원은 묵묵히 견뎠으며,함 대장은 밤새 기도로 허영호 대원의 무사귀환을 하나님께 간구했다. 허 대장을 비롯한 정상공격조는 23일 오전 6시 사우스콜에 도착한 후, 24일,C3를 경유하여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귀환한 것이다. 귀환을 마주한 함탁영 대장의 눈가에는 굵은 눈물이 맺힌 것으로 전해졌다.함 대장은 캠프에서 밤새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불렀는데,무사귀환을 빌던 기도가 실현되자 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이 울었다고 했다. 함 대장과 대원들은 눈을 케익삼고 카메라 플래시를 조명삼아 크리스마스 이브를 서로 축하했다고 했다.
이날 등정에 참여한 한 대원은 "산악인들의 진정한 우정이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당초 제천뉴스저널은 2001년 허영호 산악인이 한국산악회에서 제명된 사건과 지역 산악 선후배들 사이에서 좋지 못한 평판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산악인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떠난 인간 허영호의 실체를 조명하려고 5일을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제천산악회 이준희 회장,제천산악연맹 석시한 회장,2010년 허영호 원정대장과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던 김승환 등반대장과 김헌용 등반대원,그리고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과 1990년과 91년 북극탐험을 허영호 대장과 같이 하며,생사고락을 나눴던 최종열 탐험가,고 허영호 대장과 산악가이드를 같이 했던 신윤균 전 재경 제천향우회 사무국장 등이 지역에 조금 섭섭하게 한 것이 있더라도 그가 이룩한 업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어 추모 특집기사를 올리게 됐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천뉴스저널의 자문을 맡고 있는 자문위원이 "고향에서까지 허영호 대장을 홀대해서는 안되며,그가 이룩한 훌륭한 업적은 후세에도 길이 남길 제천의 유산"이라며,"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권고해 이를 편집에 반영키로 했다.
허영호 대장의 등반.탐험유품은 역사의 자료이자 제천의 보물이기도 하다.제천이 낳은 불세출의 탐험가 허영호,최종열 탐험기념관이 건립되어 학생들의 현장학습과 관광자원으로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허영호 유족측은 경비행기를 포함해 모든 등반유품과 탐험유품을 고향인 제천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허영호 대장은 평소 꼼꼼히 자료를 챙기기로 유명해 그가 남긴 여러 자료들과 등반 유품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귀한 역사적 자산과 관광자원으로 평가된다.
끝으로 허영호 대장이 눈을 감기 전에 청풍갤러리에서 허영호 대장의 탐험 장비들이 전시될 수 있도록 힘을 써준 청풍케이블카 이천종 부사장에게도 감사를 표한다.현재 청풍케이블카가 위치한 청풍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청풍케이블카는 현재로써는 기간 제한 없이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여름방학이 끝나면 제천단양충주원주 등 제천 인근의 초중고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통해 전시관을 견학하고 케이블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제천시와 제천교육청의 업무 협조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 허영호 대장은 제천시 송학면 개나리공원묘지에 안장됐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후 셀파 등과 촬영한 기념사진-사진의 맨아래 붉은 깃발을 든 노란색 잠바가 원정단장 김일권,그 바로 뒷편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이 故 허영호 대원,사진 맨 윗쪽 좌측 빨간색 옷이 최종열 대원, 파란 깃발을 든 노란색 옷이 故 함탁영 대장이다.

故 함영탁 대장의 생전 히말라야 등반 모습-2016년 77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오늘 제천이 낳은 세계적인 탐험가 허영호를 있게 한 구원의 동아줄 같은 분이다.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차거운 얼음위에서 대원들의 무사 귀환과 등정 성공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릴 정도로 깊은 인간적 면모를 지녔으며,따뜻한 인간애로 셀파들을 감싸 존경받는 산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